초록우산

“매번 ‘살처분’ 반복 안돼…동물 보호자가 사람도 더 배려”

작성일 : 2017-03-20 21:47 작성자 : 이유진 (vito072700@naver.com)

‘묻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에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순례 감독이 고양이 ‘알식’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동물과 인간 사랑은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 원하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난 병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이대로 죽는 건 너무 억울해.” 

“한꺼번에 이렇게, 아∼ 숨막혀.” 

지난겨울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소와 돼지가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면서 이렇게 외쳤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AI로 전국 농가에서 닭과 오리 등 가금류 3312만마리가 살처분됐다. 어차피 도축될 운명이었다고는 하지만 무지막지한 살육이 벌어진 것이다. 

2010~2011년에는 소·돼지 348만마리가 구제역에 걸렸거나 걸릴 수도 있다는 추측 아래 변을 당했다. AI와 구제역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데도 정부의 대응은 사실상 살처분이 전부다. ‘가축 전염병 공화국’으로 변한 한국의 방역대책과 살처분 방식을 비판하며 공장식 축산의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해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가 살처분의 비극을 알리는 사진전을 열고 있다. 지난 7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동물 전문 도서관 ‘생명공감 킁킁도서관’에서 열리는 문선희 작가의 사진전 ‘묻다-동물과 함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관한 기록’이다.

 

2009년부터 8년째 카라를 이끌고 있는 임순례 영화감독(57)을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도서관에서 최근 만났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AI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사진전의 소재가 된 2011년보다 3배가 넘는 규모로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생매장한 것”이라며 “동물은 힘들다고 말도 못한다. 이번 전시가 동물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1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구제역으로 600만마리 이상의 소가 생매장됐습니다. 그 사건이 동물복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됐죠.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는 ‘육류를 과하게 섭취했구나’라는 자각이 일었고요. AI와 구제역 발생 농가의 동물들만 살처분하는 유럽연합·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예방적 살처분’이라고 해서 반경 3㎞ 내의 동물을 죄다 죽여요. 2010년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생매장당하는 동물들을 보며 사람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육식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있었고요. 근데 해마다 반복되니까 이젠 무뎌진 듯해요.”

AI와 구제역의 확산은 공장식 축산의 포기와 식습관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대개 비현실적인 요구로 간주된다. 임 감독은 “정부의 자체 방역 시스템도 문제지만 공장식 밀집사육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지 않는 한 구제역과 AI는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육식을 줄이는 게 동물복지뿐만이 아니라 환경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이번 전시도 무방비로 가축을 매몰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해양·토양오염 등 육식으로 인한 환경 피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심각한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어요.”

임 감독은 완전 채식가인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을 위주로 식사한다. 그가 연출한 영화 <날아라 펭귄>에도 남성적인 직장 내 회식 문화에서 어려움을 겪는 채식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2003년 ‘락토 오보’(달걀과 유제품은 먹는 채식가)로 시작했는데, 핑계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요즘은 약간의 해산물은 먹는 ‘세미 페스코’ 정도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사람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무슨 동물보호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에게 임 감독은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 내미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면서 “동물에 대한 연민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도 역시 똑같은 배려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연출한 임 감독이 카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카라의 전신 격인 인터넷 커뮤니티 ‘아름품’의 회원을 알게 되면서다. 임 감독은 그의 권유로 그 단체의 명예이사가 됐고, 2006년 아름품이 사단법인 ‘카라’가 된 이후 2009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1월 임기 3년의 대표로 재선임된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동물보호 운동은 외국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카라가 그동안 사회 전반의 낙후된 생명존중 인식 전환에 주력하며,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법률적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2020년에 임기가 끝나면 10년을 채운 셈이니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 위치에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내년 봄 개봉 예정인 음식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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