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

[현장 답사] 항일무영열사의 발자취를 찾아 4

작성일 : 2017-03-21 00:05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답사 3일째

마지막날은 단둥시내의 항일 유적지와 압록강 유역을 돌아보았다. 저녁 6시에 배가 출발하기 때문에 4시까지 승선을 해야 돼서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루를 보냈다.

 

◆ 전쟁기념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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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00pixel, 세로 675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02월 28일 오후 5:07 가장 먼저 단둥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인데, 6.25한국 전쟁을 중국의 시각에서 해석한 기념관이 었다. 중국인들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와주었다는 뜻)라고 하는데, 기념관 입구에는 높이 53m의 거대한 기념탑이 있었다. 기념관 대부분이 김일성 주석의 활동상과 중국군의 활약으로 전쟁에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전쟁기념관과 비슷해서 전쟁 당시 사용했다는 병사들의 군복, 군화, 군모 등과 총, 대포 이런 것은 비슷한데, 미군 포로라든지, 한국군과 미군이 북한과 중국군에 밀려 남으로 쫓겨가는 사진, 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북한군의 사진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전시관만 본다면 아마도 중국 사람이나 북한사람들이 미군이나 우리나라를 적으로 느끼고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역사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어느 나라든 자신들의 나라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제 식민지 시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본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통해 자기 나라에 불리한 역사를 감추고 유리한 것만 기술하고 있는 것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교과서를 왜곡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맞지만 현재로서는 전혀 가망성이 없어 보이니까, 차라리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라도 그들의 침략과 만행의 사실을 꾸준히 규탄하고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료는 반드시 일본어로도 만들어 그들이 배우지 않은 역사도 알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 한인협회와 이륭양행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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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50pixel, 세로 80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02월 28일 오후 5:07 전쟁기념관을 나와 한인협회에 갔는데, 이곳은 3층 건물로 1층, 2층은 사무실이고, 3층은 강의실로 되어 있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단둥에서 조선족에게 한국어를 강의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인데, 우리가 갔을 때 강의는 없어서 실제로 한국어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수는 없었고, 관계자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후원단체가 없어 재정적으로 매우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건물 구조가 1층에서 3층까지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따로 따로 세를 줄 수 없고 한 단체가 사용해야 돼서 한인협회도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데 건물세가 상당히 밀려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부분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인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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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00pixel, 세로 675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02월 28일 오후 5:07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설이 조선족에게 우리말을 교육시키는 교육시설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적인 측면이나 한글 보존 측면에서도 교육이 지속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생님도 대부분 조선족들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 중에 한국어를 잘하는 분이 맡아서 하겠지만 원어민 선생의 파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우리가 기대했던 곳으로 말로만 듣던 이륭양행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륭양행은 영국인 조지 쇼우가 설립한 선박회사로, 건물 2층에 임시정부 단둥 교통국의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도록 도왔고, 항일독립단체와 독립운동가를 도와주는 비밀단체였다. 그는 일본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상해임시정부와 의열단, 대한독립단과 같은 항일단체를 후원해 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데 옥에 있을 때는 직원들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렇게 의미가 있는 단체인 이륭양행은 현재 그 터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어서 두 군데 모두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 곳은 기존의 이륭양행을 헐고 아파트가 건립된 곳이고, 다른 한 곳은 현재 단둥시 건강관리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두 곳 모두 옛 이륭양행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최범산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료는 흥륭가 25번지라는 이륭양행의 당시 주소뿐이었는데, 중국은 1980년 개방 이후 도시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옛 건물들이 줄줄이 철거당해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내가 보기엔 현재 흥륭가 터는 남아 있기 때문에, 그곳에 위치한 보건소 건물이 이륭양행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 어떤 계기로 그 건물이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증인이 없는 상태라 여기도 빨리 역사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않으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륭양행과 한인협회 사이는 홍륭가로 임시정부 시절에 이곳의 상인들이 돈을 모아 독립군에게 자금을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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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00pixel, 세로 675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02월 28일 오후 5:07 대주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읍내 같은 모습이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가 아쉬울 뿐이었다. 이륭양행이나 조지 쇼우는 한국사 책에도 나오는 중요한 곳인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조지 쇼우 또한 김구 선생을 비롯해 많은 독립투사들을 지원했는데 그 후손을 2012년에 겨우 찾아냈다. 그의 행적 또한 1920년 7월에 오학수 사건을 계기로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검거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과 일본과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고 그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되어 있지만 그 이후 1943년 죽을 때까지의 행적은 아무 기록이 없다. 건국훈장을 후손에게 전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를 독립유공자로서 대우하며, 1920년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의 행적을 밝히고 그 업적을 기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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